피카소 - 한국을 그리다 구자빈 모든인쇄 대표 前대전충남인쇄조합 이사장 ■제주4·3 사건 대한민국의 봄은 남녘 제주의 노란 유채꽃에서 시작되어 만개한 벚꽃이 4월의 창문을 열어 봄이 왔음을 알린다. 그러나 우리의 봄은 되돌아 돌이켜볼 봄이 있다. 바로 제주4·3 사건. 말 하기도 말 할수도 없었던 너무나 끔찍하고 잔혹했기에 가해자도 피해자도 말을 잊어야했던 제주4·3 사건. 그래서 였을까? 70주기를 맞아서야 재조명 되고 급기야 대통령이 공식적인 사과를 하므로써 그동안 복받쳐 응어리진 한들이 낙화하는 꽃잎처럼 한꺼번에 흩날린다. 필자가 이렇게 표현하면 혹자는 네가 6·25를 아느냐? 네가 공산주의를 아느냐? 혹은 너는 좌파구나 라고 딱지를 붙일 것이다. 필자는 이 기고문에서 좌우 이념을 논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좌우 흑백의 이념은 의미를 잃은지 오래다. 그 이유인 즉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옳으냐? 옳다라는 명제에는 이롭다는 전제가 있고, 이롭다는 것은 객체가 아닌 전체, 즉 홍익인간의 우리 민족사적 근본이념이 담겨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제주 4·3 사건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 사태 및 19
미쓰비시 홍영상 새한정밀인쇄 회장 대구 출신 톱스타 송혜교가 지난달에 미쓰비시 자동차 중국 CF 모델 제안을 받았다. 중국내 KBS2 「태양의 후예」 신드롬에 힘입어 모델료가 대단한 액수에 달했다는데, 미쓰비시는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사람들의 강제노역을 시킨 전범기업임으로 미쓰비시 자동차를 위한 모델을 할 수 없다고 제안을 거절하여 개념 배우로 송혜교가 미디어로 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 인쇄인에게는 미쓰비시가 매우 친숙한 인쇄기 제조회사이다. 상당수의 우리나라 인쇄소가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생산한 인쇄기로 인쇄업을 꾸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쓰비시 E 시리즈, 미쓰비시 F 시리즈, 미쓰비시 H 시리즈, 미쓰비시 다이아 시리즈의 4색기, 5색기, 6색기 등 수 많은 미쓰비시 인쇄기들이 우리나라 인쇄소에 설치되어 미쓰비시와 우리 인쇄소는 불가분의 관계를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어서 송혜교의 CF 모델 거절이 우리 인쇄인들에게는 곤혹스런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필자가 10여 년 전 본란 ‘인쇄이야기’에서 “미쓰비시 인쇄기의 기계소리”라는 제목으로 전범 기업 미쓰비시 인쇄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우리 인쇄소 이야기를 한 번 다룬 적이 있다. 당시 이야기
마산인쇄야사 -마산인쇄문화- 마산인쇄야사-1 마산지역 최초로 근대 인쇄를 시작한 것은 일제시대부터였다고 하지만 언제 어디서 누가 했는지 아는 인쇄인은 현재로는 아무도 없다. 다만 일제말기 추산동 소재 영창인쇄(대표 강수만)와 남성동 소재 대동인쇄소(대표 서용택) 정도 만 알 수 있을 뿐이다. 해방 후 몇몇 군소인쇄소들이 모여 마산합동인쇄라는 상호로 남성동 파출소 밑에서 운영되어 오던 중 석판, 정판이 분리하여 현 삼명정판(대표 박태만)의 모태가 되어 70년대까지 정판의 독보적 존재로 군림하였다. 그리고 활판인쇄는 각자 분리되어 60년대까지 마산의 인쇄 중심이 된다. 마산 활판의 전성기는 아무래도 6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반까지로 보아야 되지 않을까 싶다. 즉, 한일합섬이 가동되고 자유수출지역에 많은 기업체들이 들어섬으로 해서 그 당시 인쇄소의 숫자나 규모로는 주야로 작업을 해도 넘치는 물량을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프린트, 공판, 석판 등이 일부 역할을 담당했으나 그 당시 인쇄라고 하면 활판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으며 80년대까지만 해도 인쇄소에 다닌다고 하면 선도 보지 않고 딸을 주었다는 원로들의 증언이 있고 보면 종업원이 그럴진대 업주들로서는 문화사
인쇄 문화사에 대한 고찰-진주지역을 중심으로 - 장추남 / 진주 금호인쇄 - Ⅰ. 서론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애초에 말로써 자기의 생각을 나타냈고 다음에는 그 생각을 남기기 위해 암서, 수골(獸骨), 목피 등에 그림을 그렸으며 다시 그 그림에서 문자라는 것을 만들게 됐다. 그리고 그 문자를 사용하여 사상과 사실을 영구히 보존하고 또한 널리 알리려고 인쇄술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던 것이다. 미국의 서지학자 맥머트리(McMurtrie, D.C.)는 그의 저서에서 ‘인류의 문화사에 있어서 인쇄술의 발명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인간의 모든 분야에 걸친 일과 경험은 인쇄라는 매개를 통해 널리, 높게 , 멀리, 깊이 퍼져서 무지와 사교 억압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는 데 큰 몫을 했다. 인쇄매체인 신문, 잡지, 서적이 인간의 사상과 행동에 끼친 위력은 세계 각 국의 위정자들이 국민의 언론을 조정한다는 명목으로 신문과 출판에 여러 가지 제한을 가하고 또 그것을 억압한 것만 가지고도 알 수 있다’라고 했다. 곧 인쇄 역사는 인류 역사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불가결의 중대한 요소인 것이다. 어느 나라이든 정치, 경제, 종교, 교육, 사회, 사상, 철학, 문학, 예술 등 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