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조판(彫板)된 이후 약 50여 년이 지나서 판각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대장경까지 개판(開板)했다는 기록이 있다.
가야산해인사 사적(伽倻山海印寺 寺跡)에 "왕후의 발배(發背)의 환(患)이 석덕이승(碩德異僧)의 기적으로 차효(差效)를 보게 되었다 하여, 애장왕 3년(802)에 해인사를 창립하였다"고 하였으며, "장경(藏經)의 각판을 발원하여 왕도 재(財)를 사(捨)하고 내외의 조각공을 모아 거제도에서 판목을 만들어 가야산 해인사에 운반하였다" 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보더라도 신라시대 때 이미 경판이 조조(彫造)된 것을 알 수 있다."
<출전 : 釜山印刷組合史 제2편 [인쇄의 역사] 제3장 [삼국시대의 인쇄] 제1절 [신라시대의 인쇄] 75~76쪽>